최근에 읽고 본 것 -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 <호프>

개들은 보이지 않는 희망에 들뜨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희망만 면밀히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래서 그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도 서로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희망은 대부분 상대와 관계없이, 상대를 신경쓰지 않은 채, 자기 내부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대부분의 희망은 권태에서 온다). 그래서 그 희망이 좌절되었을 땐 상대를 아예 파멸로 몰고 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면서도 상처받는 쪽은 되레 자기 자신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알라딘 eBook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중에서

이기호의 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개는 눈앞에 실제로 놓인 것만 조심스럽게 살피기 때문에 그게 어긋나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지만, 인간의 희망은 상대와 무관하게 자기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어긋났을 때 상대에게로 화살이 간다는 이야기. 읽자마자 SNS에 공유했다. 처음에는 뭐가 좋은지 정확히 설명은 못 하겠고 그냥 문장이 좋아서였다. 상대가 준 적 없는 마음을 혼자 부풀렸다가 혼자 무너지는 경험 누구나 한번씩은 해보지 않는가.

거기에 더해 희망은 권태에서 온다니. 희망이 설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지루함에서 온다니. 처음엔 냉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맞는 말 같았다. 뭔가 충분히 채워져 있을 때 사람은 굳이 앞을 상상하지 않는다. 권태는 지루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은 채로 오래 지속된 상태, 혼자 감당해온 시간의 누적 같은 것도 포함된다. 그 상태로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는 상대의 것이 아니라 내 결핍의 거울이다.

연말이 되면 내년엔 좀 정리되겠지 생각하고, 뭔가 새로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제 이건 내가 안 붙들어도 되겠다고, 흐트러진 것들이 정리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도 나에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피로, 긴장, 아쉬움이 뒤섞인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대체로 어긋난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무것도 안 바뀌면 이상하게 배신감 비슷한 게 든다. 그럴 때 내가 하는 일이 정확히 마지막 문장 그대로다. 상처받은 쪽은 나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렇게 위로하는 순간 상대는 자기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어딘가에 서 있게 되니까. 나 혼자 시작하고 나 혼자 끝낸 일에 이름 모를 피고가 한 명 생긴다.

개 이야기로 돌아가면, 개가 하는 일은 관찰이다. 눈앞에 놓인 것만 보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이게 소심한 게 아니라 정확한 거라는 게 이 대목의 좋은 점이다. 최근에 나홍진 감독의 <호프>를 2회차 관람까지 하면서 어딘가 묘한 쾌감과 통쾌함을 느꼈는데, 정말 간만에 느껴본 이 감각을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가, 호포인들의 태도가 마치 명랑한 개 이시봉의 태도와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외계인을 보고 “그냥 졸라 외계인 같다”고 말하기, “아무리 괴물이라도 이럴 순 없다”고 화내기, 죽기 직전에 살아나 사랑한다 외치던 사람이 눈앞에서 으깨져도 그냥 운이 없던 거라고 다독이기, 외계 함선이 지구에 떨어져도 계속 도로 위를 달리기.. 이런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어도 온몸으로 그 상황을 당해내는 장면들에서 어딘가 벅차오름을 느꼈다 ㅋㅋ

그래도 기대가 내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것과, 그 기대가 부당했다는 것은 다르다. 기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대를 밖에 두자. 머릿속에만 있는 기대는 상대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지켜질 수 없다. 꺼내어 보여주고, 합의 가능한 형태로 바꾸자. 개들 처럼, 성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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