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차 직장인의 고민

created:May 11, 2025 12:00 AM
last-updated:May 11, 2025 9:28 PM

만 3년 6개월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나는 요즘 고민이 많다. 만 서른이 된 생활인으로서의 나도 고민이 많다. 나는 그냥 늘 고민이 많다. 근데 요즘은 더 많다.

올해 목표 중에 '빨리 실행하기'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어느때보다 더 신중하고, 그에 더해 생각의 늪에 빠져있다고 느낄 정도의 폭풍같은 상반기를 보내고 뭔가 실행에 옮겨야 될 것 같은 기분만 가지고 있다.

올해 초 회사에서는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아(?) 선임이라는 직급..을 달고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안그래도 많은 고민을 하던 나는 더 큰 부담과 책임을 떠앉게 되었다.

승진(?)도 하고 코어 프로젝트도 하는거면 좋은 기회 아니야? 뭐가 문제야? 싶겠지만 사실 최근 그동안 겪어 본 적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어려움이 어디에서부터 나온걸까 회고하면서 내린 결론을 적어보려고 쿠션 위 맥북을 펼쳐놓고 작은 방에 기대어 앉았다.

먼저 나는 성향상 생활리듬을 통제하는데에 스트레스가 큰 편이다. 예를 들면 잠이 많아서 주말중 하루는 늦잠과 낮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해야 하고. 타인과의 거리를 띄우고 혼자있는 시간을 반드시 확보해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대신 이런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만 채워지면 밤을 새고 죽도록 달릴 수 있는 나도 모르는 파워가 어디선가 나온다.

두번째, 스케줄과 업무량과 업무내용, 업무 장소가 들쭉날쭉한 프리랜서로 3년간 일해봤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해봤을 때 (물론 프리랜서만의 절대적인 장점이 있지만), 함께하는 팀과 프로세스가 안정적일 때 시너지가 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엔지니어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들어와서 가장 좋았던 것도 서로의 장점을 서로 흡수하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원팀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꼭 내가 없더라도 잘 돌아가는 서비스와,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내가 조금 더 신경쓰면 발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그런 것들이 내가 더욱더 팀과 프로세스에 신경을 쓰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라 보드 스프린트 세팅, 합리적인 일정 산정, 위클리 미팅 스케줄, 코어 타임 지키기, 효율적인 문서화, 팀내 지식 공지 및 전파 이런 것들에 남들보다 집착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 스스로도 이런 프로세스 규칙을 지키는 것에 엄격했고, 팀원들도 그래주기를 많이 바랐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냥 일이 되게 하는 방법일텐데, 결국엔 그냥 일이 잘 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고. 내가 너무 유난인걸까. 그런 고민이 매일 나를 괴롭게 했다. 심지어 문서에 있는 틀린 맞춤법을 보면서도 괴로워 했으니..

최근에 나는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전의 일 경험을 통해 삶과 일의 경계가 무너질 때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그걸 반복하지 않으려는 강한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서 '지치지 않고 오래 가는 협업'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라는 걸 알게 됐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다. 죽도록 일하는 것도 사람을 위해서 하는 거다.

하지만 '원팀 원마인드셋'은 허상이다. 많은 팀이 '원팀 원마인드셋'을 원한다. 공동의 목표가 있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거다. 맞는 말이다. 내가 허상이라고 한 이유는 내가 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듯이 우리팀 팀원들도 각자의 가치와 일하는 이유, 목표치가 다르다. 그리고 협업은 '서로의 다름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혼자는 가지 못할 길을 같이 가보자고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팀이 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을 때 팀워크가 좋아지고 프로덕트도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최근에 이런 설득의 과정에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지쳤었던 것 같다.

올해 초 미드레벨 엔지니어로서의 다음 스텝에 대한 청사진을 나름대로 그리며 '이제 이건 나에게 맡겨도 된다', '적어도 이거 하나는 내가 잘 하지' 하는 나만의 뾰족한 무기 하나를 만들고자 다짐했었다. 이 다짐은 엔지니어로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스스로 찾고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 엔지니어링 능력치를 키우자는 것이었다.

근데 이제 실행에 옮길게 더 늘었다. 팀원들의 다른 생각들도 주의깊게 들어보기. 그만큼 팀원들에게 나의 가치와 기준을 더 명확하게 잘 전달하기. 나에게 믿고 맡길 만한 근거를 마련하기. 서로 설득하고 이해하면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무기를 잘 사용하기.

최근 몇몇 시니어분들에게 얻은 피드백이 있는데 그것도 잘 기억해두려고 한다. 이제 기준을 잘하는 시니어가 아니라 스스로한테서 찾기. 스스로 이끌어갈 만한 주도성을 지금처럼 잘 가꿔나가기. (물어보지 말고 알아서 잘 해야죠 이제 ㅋㅋ <- 근데 이건 솔직히 모르겠다. 계속 물어보고 싶다. 잘 하는게 맞는지..)

이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