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 싫은 그림
나는 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면 잘 그린 그림, 만족스러운 작업 결과물이 나오면 이걸 팔거나 누구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 나는 내 그림 팔기 싫어. 아까워.” 엄마는 그러면 왜 그림을 그리냐고 했다. 잘 그린 그림을 이고지고 있으면 어디에 쓸모가 있느냐고.
그런게 있다. 사랑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사랑해버려서, 절대로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아버리는. 아름다운 책 구절은 밑줄그어두고도 절대로 다시 펼쳐보지 않거나, 너무 재밌게 본 영화는 다른 사람이 쓴 리뷰나 비평글을 찾아보지 않게되는 것.
반면에,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 심지어 갈수록 미워지는 경우도 있다. 혹은, 사랑한다고 믿고 있어도 사실은 그게 사랑이 아닌 경우도 있다. 본인은 모른다고 하는데, 솔직해져보자. 스스로 알 수 밖에 없다. 사랑은 어쩔 수가 없다.
종종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솔직하게 표현하면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꺼드럭대는 마음이 있다. 회사에서든, 친구들 무리에서든, 가족 사이에서든 그렇다. 비뚤어지고자 마음먹은 사춘기처럼 그냥 마냥 그 틈에서 뭐가 그렇게 나만 다르고, 불편하고, 조금 더 우월하거나, 보잘 것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항상 어떤 중간값을 자처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꽤나 소질이 있어왔다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만 나서는, 그렇다고 끌려가지도 않는. 내가 약간 반투명해보이길 바라면서. 거기서 어떤 합리성 같은걸 느껴왔다.
개인 작업하던 때보다, 내 캐릭터를 전면에 내놓아야 할 때보다, 내 흔적을 지우고도 잘 돌아가는 것을 만드는 지금의 일에 더 큰 도파민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오랜 나의 추구미 중간값에 최근들어 약간의 권태를 느낀다. 사실 나는 그렇게 합리적인 사람이 아닌데. 합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중간값을 장착했는지, 중간값을 사랑한다고 믿으면서 합리적인 척을 해왔던 건지 모르겠다.
내가 팔기 싫어했던 그 그림이 뭐였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언젠가 엄마집 구석에 보관중이던 습작 가방에서 꺼내어 본 누렇게 삭은 그림종이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