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회고 & Toss Frontend Accelerator 후기
1년에 세 개의 회사를 다닌 사람이 있다? 그게 나다.
사주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내 사주상 2025년이 들삼재라더니 정말 사건 사고가 많던 해였다. 코로나때는 3년이 1년같더니 작년 한 해는 반대로 1년이 10년같이 느껴졌었다. 정말 사건과 선택, 고민과 흔들림이 쉼 없이 이어졌던 해였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고민하다가 2026년이 되어버렸지만, 늦은 연말 회고를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나의 이번 포스트는 커리어의 한 가운데에서 고군분투한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2025년을 돌아보면, 유독 큰 이벤트들이 많았다.
3년 반 넘게 정들었던 첫 회사를 떠났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일의 병목보다도 조직적 한계 속에서 나 자신의 병목을 더 자주 마주했다.
사이드로는 카카오 테크포임팩트 프로젝트를 6개월간 이어갔고, 친구의 브랜드 사이트를 만들어주고,
블로그를 쓰고, 기술 인터뷰를 준비하고, 알고리즘 스터디, 밋업과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포에버갤러리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다시 퇴사했다.
때에 맞춰 이때 엄마도 아팠다. 그래도 퇴사한 덕분에 엄마를 보살펴드릴 수 있었고, 스스로도 잠시 멈춰 쉬었고, 짝꿍과 여행을 가고, 4번째 작업실로 이사도 했다.
기억에 나는 것만 이렇게 나열해도 뭐가 많은데, 그만큼 스스로를 끊임없이 바깥으로 밀어냈던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꽤 힘에 부쳤다. 어딘가에 계속 쫓기듯 일을 벌였고, 나조차도 내 속도를 따라잡기 버거웠다. 목적지 없이 폭주하는 자동차의 핸들을 두 손으로 꽉 붙잡은 채, 겨우 정면을 바라보려 애쓰고 있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커리어에서 한 스텝쯤은 더 나아가고 싶었다.
더 넓고, 더 큰 환경에서 경험을 쌓아 그것을 온전히 내 자산으로 만들고 싶었다.
웬만한 일은 어느 정도 해낼 수 있는, 이 ‘고만고만한 능력치’를 확실하게 업그레이드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뭘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막막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잘 모르겠었다. 물음표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래서 이건가, 저건가. 일단 해볼까. 그렇게 시작한 일들이 하나둘 쌓여 엉켜버린 캘린더를 테트리스 하듯 맞추며 1년을 보냈다.
그리고 12월 그동안 꼭 한번은 경험해보고 싶던 토스에 합류했다. 세번째로 새로운 팀에서 한 달간 온보딩과 Frontend Accelerator 4기 코스(앞으로 줄여서 ACC)를 병행했다. 그리고 2026년 새해가 밝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에 그토록 목말라 있었는지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됐다고 느낀다. 갑자기 바쁘게 보낸 지난 한 해를 이야기하다가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신없이 보냈던 그 시간들이 사실은, 나 스스로도 외면하고 있던 나의 결핍에서 비롯된 몸부림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는 뜻이다.
나는 mbti는 INFP에 프로고민러다. 사실 프로 걱정/근심/의심/불안 종합세트 인간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내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내가 조금(사실은 아주 많이) 괴롭더라도 내가 하는 결정과 일의 리스크를 가늠해보고 안정성을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동화되어버린 나의 관성이 더이상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와 팀이 만드는 소프트웨어는 늘 변화무쌍하고, 비즈니스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은 반드시 생겼다. 그때마다 프리모템으로 모든 최악의 상황과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베스트 프랙티스를 찾다가 아무것도 실행해보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버리게 되었다.
코드를 짤 때도 옆 동료가 개발하는 속도보다 나의 개발 속도가 확연히 느리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요구사항을 자세히 파악하고, 태스크 분배도 해보고, AI에게 일을 시켜보기도 하고, 야근, 주말근무를 일삼는데도 늘 시간이 부족했다. 내 손가락의 타자 속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이유를 도무지 알지 못한채 답답함만 커져갔다.
ACC 첫 시작으로 think aloud 방식(코드에 대해 말하면서 개발하는 방식)으로 라이브코딩 과제 영상을 녹화했다. 안그래도 껌씹으면서 횡단보도 건너기를 못하는, 내면의 고민과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는 절대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나로서는 생각의 과정을 말로 내뱉으며 동시에 개발하는 이 과제 자체만으로도 너무 큰 부담이었다.
심지어 ACC 코스동안 매주 한 번씩 think aloud 과제 영상을 더 녹화했는데, 녹화된 영상 속 나의 모습(목소리로 기록된 나의 생각의 흐름)과 IDE를 리플레이해보니 더욱 괴로웠다. 내 딴에는 적절한 선택과 합리적인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개발 과정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영상 속 나의 실제 모습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봐도 모르겠었다.
카오스에 빠진 나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알게 됐다. 아, 나의 개발 속도는 확실히 타자 속도와는 상관이 없다. 심지어 나의 병목은 코딩 실력과도 무관하다. 코딩 실력과 무관하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해보려고 한다.
나는 그동안 PR단위의 코드리뷰를 주고 받아봤지만, 생각해보니 완성된 코드가 아닌 실제로 스스로 개발하는 과정을 평가해볼 기회는 한번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개발자들이 스스로 어떤 사고 흐름을 가지고 코드를 짜고, 어떤 습관을 반복하고, 심지어 어떤 자세로 앉아서 개발하는지 알아차려 본 적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think aloud 방식의 라이브코딩 영상을 녹화해 리플레이해보길 강력 추천한다. 진실된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발견한 진실된 나는 일단 이런 문제가 있었다.
- 누군가 나의 코드를 평가한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쓸데없이 긴장, 당황하여 머리가 하얘져서 풀어야할 문제에 다가가지 못하고 패닉에 빠진다.
- 한 번에 너무 여러가지를 고민한다. 고민만하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거했다 저거했다 빙빙돌기만하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 버그를 마주했을 때, 근거없는 추측으로 엉뚱한 접근을 하다가 진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 리팩토링을 하고자 하지만, 실질적인 이득이 없는 물리적인 코드,파일 분리만 하고 있다.
- 재사용과 추상화를 이유로 함수와 컴포넌트, 인터페이스를 구성해도 실제로는 재사용하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것들을 많이 만들어낸다.
여기서 나는 나의 병목을 발견했다.
- 아, 나는 누군가에게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하는구나.
- 아, 나의 선택에 확신이 없어 우왕좌왕하는구나.
- 아, 나는 근거없는 추측으로만 얼렁뚱땅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구나.
- 아, 나는 나만의 추상화 기준이 없구나.
- 아, 나는 제일 먼저 풀어야 할 문제를 건너뛰고, 관성적으로 섣부른 최적화를 시도하는구나.
ACC 2주차, 업무가 끝나고 매일 밤 늦게까지 동료들과 모여서 머리터져가며 페어프로그래밍, 몹프로그래밍, 리팩토링, 10분 뽀모도로 이터레이션, 회고를 이어갔다. 위에 나열한 것 같은 각자의 문제점과 병목을 찾아냈고, 변화할 방향을 어렴풋이 찾아가던 중이었다. 다만, 이때도 나는 조금만 하면 뭔가 탁 트일 것 같은데, 그 언저리까지 와서 보이지 않는 그 천장을 뚫지 못해 괴로워하던 시점이었다.
ACC를 이끌어주시던 종택님은 이런 나의 상태를 어떻게 캐치하셨는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일주일 뒤로 잡아둔 커피챗 일정을 앞으로 당겨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이틀 뒤 한시간 반 가량 이야기를 나눴고 이게 나에게 아주 큰 터닝포인트가 됐다.
입사후 ACC 킥오프 미팅에서도 나는 의심/걱정/고민/불안/눈치의 능력을 바탕으로 서진님, 종택님께 이런 질문을 했더랬다.
“ACC에서 학습하고 훈련하는 것이 더 나은 개발의 과정을 만들고 실천해보는 것이라고 이해했는데, 더 좋은 과정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그간의 ACC 과정이 얼마나 유효한 성과나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는지 사실 좀 의심돼요.”
종택님과의 커피챗에서 나는 개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커피대신 따뜻한 모츠나베를 먹으면서 종택님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는 뭘 해보고 싶은지, 그리고 나는 왜이렇게 의심하고 고민하고 걱정이 많은지 질문하셨다. 종택님의 질문들에 답하면서 답에 대한 나름의 이유와 내가 마주한 문제의 원인을 설명했었다.
그때 내가 했던 고민은 우습게도 고민이 많은게 고민이었다. 그리고 뭘 해보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게 없는거 같다고 얼버무리던 나에게 운동이나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시면서 러닝이 고민과 생각정리에 도움이 된다는 추천의 말을 하셨다. 나는 “아 저도 달리기 해보고 싶네요.” 하고 대답했다.
그때 종택님의 한마디가 머리에 띵 하고 울렸었다.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지우님, 지금까지 우리의 대화에서 지우님이 해보고 싶다고 한게 달리기 밖에 없어요. 어때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달리기 언제 하실래요, 어떻게 하실거에요?”
“음.. 일단, 내일 퇴근하면서 역삼역에서 강남역까지 뛰어볼게요. 물론 좀 춥고 피곤하겠지만…”
“아니, 아니요. 왜요? 그냥 이따 집 들어가기 전에 1분만 뛰어서 집에 들어가면 안돼요?”
그렇다. 나는 뭔가 하고 싶은게 생기면 실행에 옮기기 전에 너무 많은 것을 고민한다. 그리고 할 방법을 고민하기를 넘어서 하지 못할 상황을 미리 걱정하느라 에너지를 다 쓴다. 고민하고 곱씹고, 이미 한 일, 이미 벌어진 일에 관해서도 곱씹고, 반추하고 왜 못했지, 왜 안됐지를 되새기다 지쳐버린다. 막상 실행할 순간이 오면 나는 다 소진된 상태다. 종택님과의 모츠나베챗과 ACC에서의 훈련을 마치고, 나는 탁현님과 퇴근길 역삼역에서 1분 달려 막차를 타러 갔다. 해냈다 달리기.
ACC 킥오프 미팅에서의 나의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해보지 않고, 의심,걱정,고민하고, 섣부른 전략을 고민하다가 나온 질문이었다. 그리고 ACC 3주간의 치열한 과정을 지나오면서 알게되었다.
- 좋은 과정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나쁜 과정 속에서는 절대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 못하는 나를 외면하지 말자. 외면해봤자 잘해지지 않는다.
- 0.0001 나아질 실행가능한 액션아이템을 만들고, 작고 빠르게 실행하자.
- 의심/걱정/고민은 그렇게 하기로한 나의 선택이었다. 의심/걱정/고민과 실행은 별개의 문제다. 고민하면서도 실행할 수 있다.
XY Problem이란게 있다. 질문할 때 진짜 문제(X) 대신, 그 문제를 해결하려다 떠올린 잘못된 해결책(Y)에 대해 질문하는 상황을 말한다. 나에게 ACC의 시간은 진짜문제 X를 찾는 시간이었다. 개발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시간 관리를 해보기로 하거나, 반추하면서 부족한 나를 외면하며 ‘나는 원래 예민하니까, 나는 원래 이런 성향이니까’를 내세우며 엉뚱한 방법들을 시도하거나. 이런 것들은 Y였다.
합류한 팀의 동료들도 나에게 해준 지혜롭고 고마운 말들이 있었다.
“부담갖지말고 무조건 스스럼없이 질문하세요. 지금 모르는 건 당연해요. 대신 나중에 지우님 혼자 문제들을 해결하고 업무를 해내려면, 지금 뭘 물어봐야 하는지를 떠올려 보세요.”
“디버깅을 하다 삼천포로 빠지는 건 대부분 확신없는 배팅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봐요. 추측보단 근거있는 가설을 기반으로 접근해봐요.”
“지우님, Tanstack Query든 Graphql이든 Suspensive, es-toolkit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가 풀려는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야해요.”
매일밤 의도적 수련을 함께 해온 ACC 동기들과 팀 동료들 덕분에 나는 이제
-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What)을 떠올리고, 그 방법(How)는 어떻게든 찾으면 나온다는 믿음을 가졌고,
- 복잡하고 큰 문제를 작은 단위로 분할정복해 한번에 하나씩 접근하는 과정의 중요함을 알게 됐고,
- 못하는 나와 잘하게 된 나 모두 나의 모습이라는 것, 일하는 나와 나를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 내가 시도해본 액션을 바탕으로 열린 질문을 던지며, 닫힌 질문으로는 벗어날 수 없던 나의 사고 흐름을 벗어나, 더 큰 나만의 기여로 확장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2025년 회고의 중심에는 아무래도 Frontend Accelerator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나의 병목이 코딩 실력과 무관하다는 말 역시, 이 글의 끝에서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12월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시간과 경험은 앞으로의 인생과 커리어에 오래 다져진 땅처럼 단단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